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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19

예루살렘의 기쁨

 

(사 66:10)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여 다 그와 함께 기뻐하라 다 그와 함께 즐거워하라 그를 위하여 슬퍼하는 자여 다 그의 기쁨을 인하여 그와 함께 기뻐하라

 

오늘로서 이사야서를 끝났다. 장장 일년에 걸친 대장정이었다. 그런데도 내 마음이 편치 못한 것은 바쁘다는 핑계로 45장 이후부터 강해원고를 정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막상 이렇게 마치게 되니 설교원고를 쓰지 못한 것이 매우 아쉽고 후회스럽다.

 

그동안 홀리라이프, 성경적상담협회(KABC) 홈페이지 작업관계로 정신을 쓸 틈이 없었다. 목사로서 우선순위가 바뀐 것 같아 마음이 영 편치 않다. 신선노름에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른다는 속담과 같이 목사들이 제사보다 젯밥에 눈을 골리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보지 않아도 비디오다. 어쨌든 일이 바빴다는 핑계보다는 게으르고 불순종이다.

 

오늘 우리가 이사야서 66장을 마치면서 새삼스럽게 느껴지는 것은 하나님과 예루살렘을 향한 이사야의 열정이다. 이는 아브라함, 모세, 사무엘 그리고 다윗과, 예례미야, 에스겔, 다니엘, 수많은 선지자들도 마찬가지이다. 그들은 어려운 역경과 영적 훼방 속에서 어떻게 마음의 유혹들을 떨쳐버리고 믿음을 굳건히 지킬 수 있었을까?

 

아마도 그것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 때문일 것이다. 예루살렘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입김이 그들의 영혼 깊은 곳에서 함께 숨수고 있었기 때문이다. 예루살렘을 향한 하나님의 열정과 사랑으로 말미암아 성경은 수천년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숨을 쉬어 왔고, 그 속에서 우리 또한 영혼의 숨을 쉬고 있는 것이다.

 

. 나는 평안히 잠들어 있는 어린 아이들을 보며 이 아이가 갖고 있는 평안이 과연 어디서 온 것인가 생각하게 된다. 아이는 천지가 개벽할지언정 오직 평안함에 충만해 있다. 나는 아이가 그처럼 평안한 잠을 잘 수 있는 것은 신령한 사랑의 호흡이 아이의 영혼을 권고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믿는다. 아이는 태초로부터 숨수어 온 영혼의 호흡 속에서 아이의 이성이 깨닫지 못한 예루살렘을 꿈꾸고 있는 것이다.

 

오늘 나는 새삼스럽게 내게 예루살렘의 기쁨이 없었다면 내 인생은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해 본다. 어쩌면 아직도 지옥의 물을 길며 육신의 소욕을 위해 노예가 되어 있었을 것이다. 어쩌면 사마리아 여인과 같이 고달픈 인생살이에 수치를 더하며 불 속을 헤매고 있었을 것이다.

 

오늘 이사야 선지자는 메시지를 마감하며 그의 백성들에게“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여 다 그와 함께 기뻐하라 다 그와 함께 즐거워하라 그를 위하여 슬퍼하는 자여 다 그의 기쁨을 인하여 그와 함께 기뻐하라“(10)고 권고하였다. 그러나 그의 시선은 풍전등화 속의 예루살렘을 목도하고 있었다. 그러함에도 이사야는 예루살렘과 함께 기뻐하라고 외치고 있다. 이것이 복음의 소망이며 예루살렘의 기쁨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 예루살렘은 생명줄이며 호홉하는 심장이다. 그러므로 지금도 이스라엘의 염원은 옛 예루살렘 성전의 복원이다. 그 염원이 있어 그들은 수천년의 죽음을 이기며 생존할 수 있었다. 그러면 오늘을 사는 우리는 어떠한가? 과연 하나님을 사랑하는 우리에게 예루살렘의 기쁨이 있는 것인가?

 

교회는 우리의 예루살렘, 곧 영혼의 기쁨이요, 평강의 근원이다. 만약 하나님의 말씀이 네 안에서 숨수고 있다면 네 영혼은 예루살렘의 기쁨으로 가득찰 것이다. 그러나 오늘 이사야는 우리를 향하여‘소를 잡는 것은 살인함과 같고 어린양으로 제사하는 것은 개의 목을 꺾음과 다름이 없다 너희는 기쁨을 말하고 있으나 수치를 당하리라’기록하였다. 오늘 너의 기쁨이 어디에 있으며 너희의 예루살렘은 어디인가? (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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