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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303

흠이 없고 아름다운 하나님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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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곧 흠이 없고 아름다우며 모든 재주를 통달하며 지식이 구비하며 학문에 익숙하여 왕궁에 모실만한 소년을 데려오게 하였고 그들에게 갈대아 사람의 학문과 방언을 가르치게 하였고

 

다음 주부터 공부할 다니엘서는 종말의 때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는 매우 중요한 말씀이 아닐 수 없다. 지금까지 세번 다니엘서를 강해하였지만 이번에는 오직 성경 말씀을 읽고 또 읽고 음미하며 다니엘이 오늘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가 무엇인가 살펴보고자 한다.

 

다니엘은 "하나님은 나의 심판이시다"라는 뜻이다. 그의 이름 자체가 종말의 날을 상징하는 듯하다.

다니엘서 첫장 넘기며 나를 감동시킨 말씀 중 하나는 다니엘과 세 친구를 가르쳐흠이 없고 아름다우며 모든 재주를 통달하며 지식이 구비하며 학문에 익숙하여 왕궁에 모실만한 소년이란 기록이다. 왕족이면 타락하기 쉬운데 흠없고 아름다운 사람이 있었다는 것은 이스라엘의 큰 복이다.

 

흠이 없고 아름답다"라는 표현은 종교적 용어로서홈이없다는 뜻은 율법상 결격사유가 없다는 뜻이며,‘아름답다하나님 보기에 부족함이 없다는 뜻으로 하나님 마음에 흡족하다는 말이다. 성경은 모세와 요셉과 다윗을 가르켜 아름답다고 기록했다.

 

더러움과 악이 넘치는 세대에서 하나님 앞에 흠없고 아름다움을 지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바울은 우리를 향하여 "이는 너희가 흠이 없고 순전하여 어그러지고 거스리는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없는 자녀로 세상에서 그들 가운데 빛들로 나타내라"(2:15)라고 권하였으며 베드로는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벧후3:14)하였다.

 

또한 유다는 장차 주 앞에 설 우리의 모습을 소망하며 "너희로 그 영광 앞에 흠이 없이 즐거움으로 서게 하실 자"(1:24)라고 기록하였으며, 사도요한은 장차 이스라엘의 시간에 나타날 십사만 사천명을 가리켜 "그 입에는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이라"(14:5)라고 소개하였다.

 

또한 성경은 아름다움에 관하여는 예수를 가리켜저가 천사보다 얼마큼 뛰어남은 저희보다 더욱 아름다운 이름을 기업으로 얻었다기록하여 아름다운 자의 본을 보였으며, 집사의 직분을 잘한 자들을 가리켜아름다운 지위라로 칭송하였고, 복음의 사역자를 향하여는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네게 부탁한 아름다운 것을 지키라”(딤후1:14)명령하였다.

 

자신을 돌이켜 보건데 흠없고 아름다운 성품은 타고난 천성만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본성적 타고난 성품도 중요하겠지만 이런 성품은 학문적이고 재능적인 능력을 요하는 것이 아니라 용광로에 달구어낸 정금 같이 오랜 시험을 거쳐야 가능하다. 그러므로 예수를 가리켜 시험한 돌이라 기록하였다.

 

나는 미국 갈보리채플을 다녀 올 때마다 나의 부성실함을 발견하게 된다. 내가 갈보리채플 사역자로 부름을 받은지 이십여년이 되었음에도 척스미스 목사님이 갈고 닦은 연단의 열매들 속에 들지 못하였으니 말이다. 얼마를 더 벗겨져야 주께서 합당히 쓰실 그릇이 될지 후회만 막급하다.

 

흠없고 아름답게 되는 것은 세상의 많은 지식과 학문을 터득하여 모든 것을 통달하는 지혜가 있다 고 해서 이루러지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오직 택하신 그리스도의 은혜와 진리의 말씀 가운데 나타난 성결의 영의 권능 속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누가 큰 능력을 받았다 해도 육체의 소욕에 빠져 있다면 그는 결국 더러운 사단의 올무에 사로잡히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히브리서 기자는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다"(6:5)기록하였다.

 

오늘날 우리 가운데는 수많은 영혼을 주께 인도한 위대한 지도자들을 볼 수 있다. 그러나 그의 거대함이 커질수록 나타나는 육체의 흠들은 보는 이들을 부끄럽게 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이 어디에서부터 시작된 것인지 우리는 깊게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이요나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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