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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345

열매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를 향한 나의 소망 (누가13장 6~9절)

‘무화과’는 포도나무나 감람나무와 더불어, 이스라엘을 상징하는 나무이다. 이 나무들은 이스라엘 민족의 평안과 번영과 영광과 영광을 상징할 때, 축복의 비유로 등장한다 (욜 2:22; 미 4:4). 이와 반대로 교만과 저주를 상징할 때는 가시나무가 등장한다.

무화과나무는 이름 그대로 꽃이 없이 열매를 맺는 나무로서 일 년에 두 차례 열매를 맺게 되는데, 겨울 무화과(계 6: 13)는 작고 딱딱해서 식용으로 적합하지 못하고, 여름 무화과(막 13:28; 마 24:32; 눅 21:29)는 식용으로 사용한다.

예수께서 무화과나무에 대해서 세 번 말씀하셨는데 그중에 가장 큰 내용은 무화과나무를 저주해서 말라버린 이야기(막 11:12~14, 20~22; 마 21:18~21)와 무화과나무 새순의 비유(막 13:28~31; 마 24:32~35), 그리고 오늘 우리가 살펴 볼 누가복음 13장의 무화과나무의 비유이다.

누가복음 13장 6절-9절에는 “그분께서 또한 이 비유를 말씀하시되, 어떤 사람이 자기 포도원에 무화과나무 한 그루를 심게 하고 와서 그것의 열매를 구하였으나 하나도 찾지 못하니라. 이에 그가 자기의 포도원지기에게 이르되, 보라, 내가 이 삼 년 동안 와서 이 무화과나무에서 열매를 구하되 하나도 찾지 못하였으니 그것을 베어 버리라. 어찌하여 그것이 땅을 버리게 하겠느냐? 하매 그가 대답하여 그에게 이르되, 주인이여, 내가 그것의 주위를 파고 그것에 거름을 줄 때까지 금년에도 그것을 그대로 두소서. 만일 그것이 열매를 맺으면 좋으려니와 그렇지 않으면 그 뒤에 그것을 베어 버리소서, 하였느니라 하시니라”기록되었다.이 비유는 열매를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를 두고, 포도원 주인의 책망과 포도원지기의 청원으을 다루고 있다(6-9).


우리가 구약적 관점에서 생각할 때 포도원은 이스라엘이요 포도나무는 유다지파이다.  이사야 선지자는 "대저 만군의 여호와의 포도원은 이스라엘 족속이요 그의 기뻐하시는 나무는 유다 사람이라 그들에게 공평을 바라셨더니 도리어 포학이요 그들에게 의로움을 바라셨더니 도리어 부르짖음이었도다"( 사 5:7) 기록하였고, 다시 "내가 나의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노래하되 나의 사랑하는 자의 포도원을 노래하리라 나의 사랑하는 자에게 포도원이 있음이여 심히 기름진 산에로다  땅을 파서 돌을 제하고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었었도다 그 중에 망대를 세웠고 그 안에 술틀을 팠었도다 좋은 포도 맺기를 바랐더니 들 포도를 맺혔도다"(사 5:1-2) 한탄하였다.


오늘 예수님의 비유를 생각할 때 볼 때  유대인의 관점에서 볼 때 문제의 원인은  자기 포도원에 무화과 나무를 심게하고 열매를 얻기를 구한 주인에게 있다. 율법에서도 "네 포도원에 두 종자를 섞어 뿌리지 말라 그리하면 네가 뿌린 씨의 열매와 포도원의 소산이 다 빼앗김이 될까 하노라"(신 22:9) 하였거늘 포도원 주인은 율법을 거슬린 돌출적인 행동을 것이다.


자기가 믿는 포도원지기에게 딱 한 그루의 무화과 나무를 심고 삼년동안 찾아와서 열매를 구했다는 것으로 보아 오늘 예수님의 비유는  하나님께서 율법 중심의 유대인들 가운데 복음의 교회를 개척하는 새로운 모험을 말씀 하신 것을 알 수 있다. 주인은  포도원을 갈아 업지 않고 포도원에 무화과 나무를 심어 포도와 무화과를 함께 수확할 수 있는 가능성을 시험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유대인 속에서 불가능한 것이다.  


나는 오는 3월에 서울 갈보리채플 성경대학을 개설하면서 24년만에 성취된 기쁨에 흥분하여 잠을 이루지 못하고 또 한편으론 과연 우리와 같은 작은 교회가 성경대학 사역을 감당할 수 있을까 하는 염려로 잠을 설치고 있다.

성경대학은 한국적 관점에서 말하면 신학교이다. 목사를 꿈꾸는 사람들이 작정을 하고 들어 오는 곳이다. 그래서 각 교단마다 신학교 신대원을 세우고 매년 천여명의 헌신자들이 입학을 하고 있다. 그 결과 우리나라는 미국 다음의 선교대국이 되었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한국에는 성경대학이 없다. 일반적으로 성경대학이라고 말하면 교회 안에 있는 평신도 성경학교로 치부해 버린다.


갈보리채플 성경대학은 불과 오십년의 역사도 채 안된다. 1965년대  코스타메사 갈보리채플의 개척자 척스미스 목사님이 젊은이들에게 오직 성경전체를 체계있고 심도 깊게 가르치기 위해 바이블 칼리지는 세운 것이다. 척 스미스 목사는 2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적은 비용으로 누구라고 성경을 배워 복음사역에 헌신할 수 있는 길을 연 것이다.  보수 정통을 고집하는 미국 기독교계에서는 비웃음 살 행동이었다. 포도원에 무화과 나무 한 그루를 심는 것 같은 모험이 아닐 수 없었다.


1960년대 예수운동으로 시작한 갈보리채플은 시대적 반항아들인  히피들이 구심점이 되어 시작되었다. 침례교 출신인 척 스미스 목사님과 24명으로 시작한 코스타메사 갈보리채플은 오늘날  켈리포니아 일대에만도 천여개의 갈보리채플을 개척하였으며 갈보리채플 성경대학을 졸업한 삼천여명의 젊은이들이 전세계로  나가서 복음사역을 하고 있다. 2003년 보고에 의하면 갈보리채플 청년들이 인도에서 시작한  가정채플이 1000개가 되었다고 한다.


나는 24년전 일본에서 들어와 서울 갈보리채플을 세우면서 마음에 소망을 가졌던 것이 갈보리채플 바이블 칼리지이다. 20년전 이태원에 서울교회를 개척했을 때 한인채플 김동백 목사님을 통하여 척스미스 목사의 승인을 얻어 어렵게 학교를 시작하였지만 우리는 1년만애 문을 닫고 말았다. 더글러스 신 목사. 이마이 목사와 함께 시작하였지만 우리는 열매를 맺지 못하고 문을 닫고 말았다.

그후 이십년이 지난 지금 나는 최근 갈보리채플 성경대학을 준비하면서 주변에서 껄꺼로운 눈총을 받고 있다. 탈동성애자 출신이 동성애자들이나 데리고 탈동성애운동이나 할 것이지 더러운 음행에 빠진 망나니들을 복음사역자로 세우기 위해 성경대학을 세우는 것이 가당키나 하냐는 눈치들이다. 어쩌면 오십여년전 척스미스 목사님께서 사단에 물든 히피들을 데리고 갈보리채플 성경대학을 시작할 때도 교계의 시선은 곱지 않았을 것이다.

과수원 주인이 큰 마음먹고 어렵게 시작한 무화과 열매를 얻기 위한 모험은 3년이 되어도 열매를 맺지 못하였다. 이에 분노한 주인은 어찌 땅만 허비하느냐 무화과 나무를 찍어 버려라 하였다. 그러나 과수원 지기는 주인의 단호한 폐쇠 명령에도 굴하지 않고 “주인이여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내가 두루 파고 거름을 주리니, 이후에 만일 열매가 열면 좋거니와, 그렇지 않으면 찍어버리소서” (8~9) 간청하였다.

그렇다 주변의 눈총은 문제되지 않는다. 주인만 허락하면 되는 일이다. 포도원의 주권은 주인에게 있고 포도원에서 무화과 열매를 따던지 오양간에서 돼지를 키우던지 중요한 것은 주인이 기뻐 받을 열매이다.

우리 교회는 강남 논현동으로 이전한지 3년 되었다. 열두명의  청년들로 무일푼으로 강남 논현동에 교회를 개척한 것은 애굽을 탈출하여 가나안 땅에 들어 오기 보다도 힘든 일이다. 그러나 주님은 3년 동안 논현동으로 이전한 서울 갈보리채플은 포도원으로서 부족함이 없도록 축복하셨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 열매를 얻지 못했다. 땅이 나빠서도 아니다. 내가 부족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 주께서 말씀하신 비유를 나의 비전을 삼아  땅을 깊이파고 거름을 넉넉히 넣어 전심을 다해 다시 시작해 보려고 한다.  세상 사람들이 뭐라고 하던 주인이 허락하면 된다. 나의 목적은 나의 주인이 기뻐하는 무화과 열매를 드리는 것이다.

오늘날 거대한 교회들이 포도주에 취해서 비틀거리는 세태 속에서 자기의 아름다움응 뽑낼 꽃을 피우지 않고 오직 주인의 기쁨을 위해서 실한 열매를 맺는 무화과나무를 가꿀 것이다. 우리는  오늘날 미국 갈보리채플을 세운 선진들이 준비한 터 위에 조심스럽게 힘써 세울 것이다.

삼년 후 나는 나와 함께 선 자들과 함께 수확을 나누는 기쁨을 맛볼 것을 기대한다. 이 위대한 추수사역에 함께 할자가 누구인가? 그러나 이 때를 놓쳐 버리면 삼년 후의 당신은 더욱 나빠져 있어 찍혀 버리게 될 것이다. 그러니  주여 부디 나를 도우소서.  내게 힘을 더해 주소서 아멘 아멘 (이요나 목사)

서울 갈보리채플 성경대학 02-546-5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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