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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351

그런즉 깨어 있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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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13)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너희가 사람의 [아들]이 오는 그 날도 그 시각도 알지 못하느니라.

 

마태복음 23장 마지막에서 주님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에게 "너희가 찬송하리로다. []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할 때까지 이제부터 너희가 나를 보지 못하리라“(23:39) 하셨다. 또한 마태복음 24장에서 제자들은 예수님께 성전이 파괴되기 전에 나타나는 표적이 무엇인지 그리고 어떤 표징과 그 시대가 끝나기 전에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지에 대하여 물었다.

 

예수님은 자신의 재림을 나타내는 여러 가지 표적들과 재림 전에 일어날 징후들과 사건들에 대해 말씀하시며 하나님의 왕국을 세우기 위해 영광의 구름을 타고 오실 것을 약속하셨다. 그러므로 주님은 제자들에게 종말의 날에 대하여 예비할 것을 스스로 준비하라고 하셨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에 그러나 형제들아, 그 때와 그 시기에 관하여는 내가 너희에게 쓸 필요가 없나니 []의 날이 밤의 도둑같이 이르는 줄을 너희 자신이 완전히 아느니라“(살전 5:1,2)

하였듯이 주님께서는 그 때를 알기를 원하신다. 그러나 우리는 그 날이나 시간을 모르기 때문에 성경의 말씀을 지켜보고 예비하여야 한다. 그러므로 주님은 여러 비유로서 우리를 가르치셨다.

 

오늘 우리가 살펴 볼 마태복음 25장에는 주의 날을 위해 준비해야함의 중요성을 언급되었다. 그 이유는 주를 믿으면서도 준비되어 있지 않은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앞에서 주님은 두 사람이 밭에 있으며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두 여인을 매를 갈고 있으나 하나만 데려감을 당할 것이라 고 경고 하셨다. 일대일의 확률이란 정말 두려운 것이다.

 

오늘 25장 첫 비유는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처녀 비유이다. 이는 재림을 기다리는 우리 모든 성도들을 뜻한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랑이 더디 오므로 모두가 다 졸며 잠들었는데 밤중에 신랑이 오는 소리를 들은 처녀들이 일어나 등불을 준비하는데 열처녀 중 게으른 다섯 처녀가 기름을 준비한 다섯처녀에게 기름을 나누어 달라고 부탁하였다. 그러나 슬기있는 처녀들이 우리와 너희가 쓰기에 부족하니 파는 자들에게 가서 너희 쓸 것을 준비하라 답하였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들이 기름을 사러 나간사이 신랑이 와서 예비하였던 자들은 함께 혼인잔치에 들어가고 문이 닫혀 버렸다. 그 후에 남은 처녀들이 와서 주여 주여 우리에게 열어 주소서 하니 주께서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 하였다.

 

교계에는 열 처녀들의 비유에 대한 해석이 분분하다. 그러나 우리는 해석을 찾기 보다는 비유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열처녀는 교회 전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지혜있는 다섯처녀는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지체를 상징한다. 그러면 어리석은 다섯처녀는 누구인가? 그들은 성경의 권고와 경고를 무시하고 세상적으로 살던 육신척 크리스챤일 것이다.

 

이미 예수님은 천국의 비유를 겨자씨가 자라서 나무만큼 커지만 새들이 그 가지에 깃들 수 있다고 경고하였으며 여인의 가루에 섞인 누룩과 같이 교회가 성장하면서 부폐해져 갈 것을 예고하신 바 있다. 교회가 성경에 기록된 모든 말씀을 심도깊게 가르치지 않고 교회 성장에 매달려 잎이 무성한 나무가 되기를 힘쓰는 사이 이미 교회 안에 좋지 않은 새들이 깃들어 버린 것이다.

 

오늘날 교회를 볼 때 많은 교회들이 배도한 것을 볼 수 있다. 많은 거짓 목사들에 의해 표현 된 성경에 대한 회의론적인 불신앙이 누룩처럼 번져 성도들은 진리에서 벗어나 불의한 생활에 빠져버리고 그러면서도 자신들은 그리스도인이라고 착각을 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기름을 준비해야한다. 기름을 준비한다는 것은 진리의 말씀 안에서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지혜로운 성도의 삶을 뜻한다. 이제 당신의 선택할 차례다. 그러나 선택의 폭은 넓지 않다. 결국 둘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이요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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