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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451

내가 약할 그때에 강함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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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후 12:10)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

 

바울은 서두에서 "무익하나마 내가 부득불 자랑하노니 주의 환상과 계시를 말하리라" 기록하였다. 여기서 무익하다는 말은 이러한 자랑이 성도들에게 유익이 되지 못한다는 말이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입신을 하여 천국을 갔다 왔다고 자랑하지만 모두 무익한 일이다.

 

바울은 자신의 환상을 언급하여 "십사년 전에 그가 세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기록하였다. 이 부분은 신비의 세계를 이끌어 내어 설명한 부분이므로 온전한 번역이 쉽지 않은 부분이다,

 

여기서 바울은 현실 삶 속에서 세 번째 하늘에 이끌려 갔었던 일을 제 삼자적 견지에서 간접적으로 설명하였다. 여기서 삼층천이란 하늘나라의 현실을 알지 못하는 우리로서는 짐작조차 불가능한 신적세계이다. 몰몬교에서는 일곱 개의 하늘을 언급하고 있습니다만, 바울이 셋째 하늘이라고 언급한 것으로 보아 첫째 하늘과 둘째 하늘 그리고 셋째 하늘이 있음은 분명하다.

 

3절에서 바울은 "내가 이런 사람을 아노니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 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니라) 그가 낙원으로 이끌려 가서 말 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로다"하였다. 바울이 두 번이나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니라)고 주석을 단 것으로 보아 바울은 자신의 영이 몸 안에 있었음을 의식하며, 또 자신의 영이 몸 밖을 나갔던 것을 의식하였음을 알 수 있다.

 

신학적으로 낙원은 육체의 한계를 벗어난 성도가 그리스도의 날까지 쉬는 곳으로 주님은 십자가에 함께 달린 강도에게 "네가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이르리라" 말씀하셨다. 어원을 미루어 생각하건데 '낙원'이란 육체와 하나님 나라의 경계선일 수도 있지만 바울의 증언으로 낙원은 세 번 째 하늘에 있음을 알 수 있다.

 

바울은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단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처서 너무 자고하지 않게하려 하심이라"(7) 증거하였다. 여기서 계시란 하나님의 신적계획을 뜻한다.

 

바울은 주께서 자신이 받은 계시들로 교만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육체에 가시를 두셨다 하였다. 바울이 자신의 육체에 임한 고통을 '사단의 사자'라고 칭한 것을 통해 욥의 고난을 연상할 수 있다. 그러므로 바울은 의사 누가와 동행하지 않았나 싶다.

 

바울은 자신의 육체에 임한 고통을 위해 세 번이나 주께 간구하였다고 하였다. 그러나 주께서는 번번이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 하시며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짐이라"하셨다. 그러므로 바울은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때 곧 강함이라"선언하였다.

나는 목사가 된 후 내 안에서 견딜 수 없는 눌림을 체감하였다. 그 눌림은 나의 의식이 음부로 이끌어 가는듯한 견디기 힘든 혐오와 함께 감당키 어려운 두통이 동반되었다. 진통제를 먹지 못하는 체질이라 묵묵히 몸을 주께 맡기고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어떤 때는 몇 시간이 지속되기 하고 밤을 뜬 눈으로 세기도 했다.

 

나의 작은 고통을 감히 바울의 가시에 비교할 수조차 없지만 내가 당하여야 능욕과 궁핍과 곤란을 감사해야 함을 배웠다. 그 고통을 감수하므로 해서 내게 부어주시는 그리스도의 은혜로 내가 강해 질 수 있기 때문이다. 주여 오서 오시옵소서.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아멘. (이요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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